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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책 2020. 5. 8. 00:37
오늘 서점 간 김에 김영하 작가님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 한 번 읽어 보았다.
이번 신작(?)은 아닌 이 책은 예전에 나온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라는 책을 재발행 한 걸로 알고 있다.
예전에 한 번 읽어봤는데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 무슨 다른 변화가 있을까 싶어 궁금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책은 그대로일 것이고 아마 내가 무엇이 바뀌었을지가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장편의 소설보다 단편 소설을, 또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해서 랄랄라 하우스, 여행자,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포스트잇, 굴비낚시,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 등 여행기나, 아님 잡다한 일상에 관한 글들이 담긴 에세이가 더 재밌었고 그 위주로 골라 보았다. 왜냐면 그런 에세이는 사실적이고 꾸밈없고 또 난 이미 예전부터 남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아무튼 남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즐겨 읽었다.
어렸을 적 나는 더 성미가 급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고, 집중력도 낮고, 기억력도 나빠서 소설을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서 오랜 시간 후 다시 보면 새까맣게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서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새로 보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때도 분명 재밌긴 하지만 성미가 급한 나는 전개가 느린 장면을 볼 때면 잠들거나, 중요한 장면이 나오더라도 어느 정도 집중력이 떨어질 때와 겹치면 항상 꿈나라로 떠났다.
그러니 자연스레 드라마보단 예능이나 짧고 강렬하고 내용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 상이다. 빨리 빨리 성과를 내야 하고, 어떤 결과가 눈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빨리 포기해버리고, 금방 급변하는 사회에 알맞은 인간이 되어 현대 문명의 특혜를 누리며 온갖 디지털 기계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런 인간 말이다. 휴대폰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면 더욱 초조해지는 이 시대가 원하는 상이 되어, '나'는 사라지고, 인간보단 기계가 전부인 기계와도 같은 사람 말이다.
기계와 친해질수록 집중력은 더 나빠지고 한시라도 나의 눈, 코, 입, 귀, 손 등 내 신체 감각의 일부가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끼고 기계와 한 몸이 되어 가는 것. 그게 이 시대가 추구하는 인간상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기계화가 되는 것.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어느정도는 그렇게 되어간다.
산속의 절에 있는 스님들도 휴대폰을 가지고, 깊은 골짜기나 섬에 살더라도 TV, 휴대폰, 컴퓨터 등은 필수품이 되었지 않은가?
어쨌든 그렇다 보니 문명을 누리면서도 점점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고 싶고 외부와 차단되고 싶어 지는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게 되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공기 좋고, 물 좋고, 자연경관이 푸르른 곳에 가서 아무 걱정 없이 자연을 만끽하며, 마음을 힐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게 요즘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함께 느끼며, 결국은 어딘가로 떠나도 보고, 골탕도 먹어보고, 타지에서 느끼는 여유로움도 같이 느끼고, 상상하며 읽어 볼 수 있다.
잠시나마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한 번쯤 여유로운 일요일의 늦은 아침에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느긋하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책과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면서 내가 달라진 것도 느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단편의 여행담을 짜 맞춘 여행기보단 긴 이야기가 더 읽고 싶어 졌고, 신기하게도 시칠리아 섬으로 가는 그 부분은 책을 읽은 지 5년 정도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었다는 것.
예전에는 그냥 가볍게 즐겨 읽었던 아름다운 한 순간이 담긴 여행 이야기가 지금의 나에겐 그냥 지루한 일상의 연속처럼 느껴진 것, 그래서 아름답게 포장된 여행담보다 여행하면서 생긴 예기치 못한 일들, 골탕먹었던 이야기가 내게 가장 재밌게 와 닿은 것. (예전에도 시칠리아로 가는 여정이 그려진 그 부분은 재밌었지만.)
남이 힘들었던 여행이 왜 가장 재밌게 느껴질까 생각해보니 요즘의 소셜 미디어엔 아름다운 여행 사진이 넘쳐나고, 여행이라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포장되어 있다. 아무도 자신의 힘들었던 모습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대문짝하게 걸어놓지도 않고 그런 사진은 보여주지 않아 찾기도 힘들다. 하나 같이 가장 예뻤던 순간, 멋진 사진만이 넘쳐나니 그런 아름다운 이미지의 여행에는 이제 질려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상하고 진기한 경험을 위한 테마 여행도 생길 것 같다. 어쩌면 어딘가엔 그런 테마여행이 분명 있을 것인데 나만 이제야 깨달은 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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