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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책 2021. 4. 29. 07:57
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갔다. 그처럼 서두르며, 달음박질을 치고, 버스에 흔들리고, 게다가 가솔린 냄새, 하늘과 길 위에 반사하는 일광, 그러한 모든 것 때문에 아마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버스 속에서 거의 내내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어떤 군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웃어 보이며, 먼 데서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더 말하기 싫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전등 두 개 중 하나를 끌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담벼락에 반사하는 불빛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수위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였다. 전기 가설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다 켜든지 아주 꺼 버리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나는 그에게 별로 주의를 하지 않았다. 그는 나갔다가 들어와서 의자들을 늘어놓고, 한 의자 위에다가 커피 주전자와 그 둘레에 찻잔을 두 개 놓았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 쪽으로 가서 나와 마주 앉았다. 간호원은 방 구석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으나, 팔을 놀리는 것으로 보아 털실로 무엇을 짜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안은 훈훈하고, 커피를 마셔서 몸도 훈훈한데, 열린 창문으로부터는 그윽한 밤의 꽃냄새가 풍겨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졸었던 모양이다.
무엇인가 스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감았던 탓으로 방안의 흰 빛은 더욱 눈부셔 보였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모든 것 들이, 모서리 하나하나, 곡선 하나하나가 눈에 아프게 새겨질 정도로 뚜렷이 드러나보이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양로원 친구들이 들어왔다. 모두 한 여남은 명 되었었는데, 그녀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눈부신 빛속을 살며시 걸어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은 의자 하나 삐걱거리지도 않고 앉았다. 나는 그때 그들을 본 것처럼 자세히 사람을 본 적은 일찍이 없었으며, 그들의 얼굴, 옷차림의 사소한 모양 하나까지라도 나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도 말이 없어, 이 세상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여자들은 거의 모두 앞치마를 걸치고, 허리를 끈으로 졸라 매어, 그 부른 배를 더욱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때처럼 늙은 여자들의 배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 것인가를 목격한 일이 없었다. 남자들은 거의 모두 몹시 여위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눈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주름 바탕 한가운데 희미한 빛만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이 앉았을 때, 거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가 빠져 버린 입속으로 입술이 오그라든 얼굴들을 어색하게 기울였는데, 그것이 내게 대한 인사인지 혹은 그들의 버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이 모두 수위를 둘러싸고 나와 마주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을 내가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잠시 나는,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하여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상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나는 줄곧 일을 많이 하였다. 레이몽이 와서 그 편지를 보냈노라고 말하였다. 에마뉘엘과 함께 영화 구경을 두 번 갔었는데, 에마뉘엘은 스크린 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해 못하는 때가 가끔 있다. 그러면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약속대로 마리가 찾아왔다. 나는 심한 정욕을 느꼈다. 마리가 붉고 흰 무니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력이 있어 보이는 젖가슴이 완연히 드러나 보이고, 햇볕에 그을은 살갗이 얼굴을 꽃처럼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곧 버스를 타고, 알제이에서 여러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서,
좌우에는 바위가 솟고 기슭에는 갈대가 우거진 바닷가로 나갔다. 4시의 태양은 과히 덥지는 않았으나 물은 따뜻하고, 길게 퍼진 게으른 듯한 물결이 나직히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리가 놀이를 하나 가르쳐 주었다. 헤엄을 치며 물결 등성이에서 물을 들이마시어, 입속에 거품을 가득 채운 다음, 번듯이 누위서 하늘로 향하여 그것을 내뿜는 것이다. 그러면 물거품 레이스가 되어서 공중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미지근한 보슬비처럼 얼굴 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입속이 짜서 얼얼하였다. 그러자 마리가 다가와 물속에서 나에게 달라붙었다. 마리는 자기의 입술을 나의 입에 갖다 대었다. 그녀의 혀끝이 나의 입술에 산뜻하게 닿았다. 잠시 동안 우리는 물결 속에서 됭굴었다.
바닷가로 나와서 옷을 갈아입을 때, 마리는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하여 주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급히 버스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우리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곧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놓았다. 여름 밤이 우리들의 검게 그을은 육체 위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참으로 유쾌하였다.
오늘 아침 마리가 있게 되어서, 나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하여 놓고, 고기를 사러 내려갔었다. 돌아오니, 레이몽의 방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뒤에는 살라마노 노인이 개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계단 위에서, 구두창 소리와 개 발톱 소리가 나더니 '빌어먹을, 망할 자식!'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들은 길로 나가 버렸다. 노인의 이야기를 마리에게 해 주었더니, 마리가 웃었다. 마리는 내 파자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웃었을 때, 나는 또 정욕을 느꼈다.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쓸데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하였다. 마리는 슬픈 빛을 보였다. 그러나 점심을 준비하면서, 아무 이유도 없이 허리가 끊어지게 웃기에, 나는 또 키스를 해주었다. 바로 그때 레이몽의 방에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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